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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쓰려면

작성자초록편지

작성일2012-09-01

조회수10,621

 

시를 잘 쓰려면

                                       정호승  시와 음악과 사랑이 있는 곳

 

나는 스스로 시를 버린 적이 세 번이나 있다. 1982년에 시집 ‘서울의 예수’가 나오고 87년 ‘새벽편지’가 나올 때까지 5년 동안, 90년에 ‘별들은 따뜻하다’가 나오고 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나올 때까지 7년 동안, 그리고 99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가 나오고 지금까지 3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시를 버리고 살아왔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등단한 지 30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도합 15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아왔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마치 ‘돌아온 탕아’를 둔 아버지처럼, 내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 따뜻하게 맞이하고 돼지를 잡고 잔치를 벌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제는 시가 나를 버려도 내가 시를 열심히 찾아가 효도할 생각이다. 이제 느린 것은 두렵지 않으나 멈추어 서는 것은 두렵다.

나는 일찍이 마흔 하나에 ‘월간조선’에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10년 동안 ‘수절’을 하다가, 21세기가 시작되는 벽두에 ‘현대문학북스’라는 출판사를 창업하고 위탁경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도 지난 연말에 그만두고 다시 내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출판인이 아니고 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물론 친소유무를 떠나 이해득실과 손익계산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그 얼마나 표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공부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들을 이제 내 스승으로 삼고 있지만, 나는 늘 이렇게 깨닫는 일이 늦어 막대한 시간을 그 대가로 지불한다. 월간조선을 그만뒀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은 그때 나는 문청 시절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나는 결국 문학의 장르 중에서 나의 문학적 기질에 맞는 장르가 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만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인생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죄가 가장 크다는데, 나는 이렇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뒤늦게 깨달아 인생을 허비하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용서하시라. 지금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다시 시의 자리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은빛 니켈로 만든 십자고상이 하나 놓여 있다. 평생 십자가에만 매달려 살아온 청년 예수를 바라본다.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짜식!” 하고는 싱긋 웃는다. 나는 그 맑은 웃음에 그만 고개를 숙이고 묵상한다.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의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시를 쓰기 전에 먼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를 쓸 수 없었다. 나의 삶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모자이크라는 것을,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과 시련이란 해가 떠서 지는 일만큼이나 불가피하다는 것을, 불행이 인간을 향한 신의 가장 확실한 표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단 한 편의 시도 쓸 수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쓴 시들은 고통이 잠깐 잠잠해지고 난 다음에 집중해서 쓴 시들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문예지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벼락치듯이 한 권 분량의 시를 써서 급하게 시집을 내곤 하였다.


깊은 사색의 사막을 건너지 못하고 무슨 자위하듯이 시를 썼으니 그 시들이 오죽하랴. 그 동안의 고통을 위로 받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다 보니 나로서는 자연히 그런 방법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괴테는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름다운 색채는 바로 빛의 고통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다. 고통과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인간이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자 어느덧 50대 중년의 사내가 되고 말았다.


상처 없는 사람은 결코 먼 길을 떠날 수 없고, 이미 먼 길을 떠난 사람에겐 오히려 그 상처가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제 그 상처의 힘으로 다시 시의 길을 가려고 한다. 세상에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길이 있지만 꼭 가야 할 길이 있다. 이제 그 길이 시의 길임을 확신한다.


어린 시절 나는 시를 내 현실적 삶의 한 방편이나 도구로 활용했다. 시의 본질적 가치를 중요시하기보다 시가 왜 나의 현실에 필요한가 하는 데에 먼저 시의 가치와 효용을 두었다.


고3 때는 문예장학생을 모집하는 유일한 대학인 경희대학교에 무시험 입학하기 위하여 시를 썼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문단에 등단해야만 졸업 때까지 문예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어서, 그 장학금을 받기 위하여 또 열심히 시를 섰다. 이렇게 나는 시를 무기 삼아 현실적 난관을 타개해 왔고, 그때마다 시는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시는 나로 하여금 시대와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밝은 눈을 지니게 해주었다. 내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의 말석에 엉덩이를 디밀었을 때는 ‘10월 유신’이 선포된 지 불과 석 달 뒤였으며, 이후 1979년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나의 20대는 줄곧 유신시대와 그 시기를 같이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그 겁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약한 나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을 죽였으며, 긴급조치가 선포될 때마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하는 그 거대한 테러 앞에 쥐새끼처럼 벌벌 떨었다.


그때 나는 70년대의 젊은 시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용기 있는 자는 행동하였으며, 나처럼 용기 없는 자는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스스로 비굴하게 느껴졌다. 한두 해도 아니고 70년대를 온통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김지하 시인을 감옥 밖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나의 심정은 참으로 안타깝고 비참한 것이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70년대의 모든 시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지금도 김지하 시인에게 감사와 부채 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도 그때 시는 섬약하고 용기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 그나마 시를 쓰게 해주었다.


비록 목소리는 작고 여리고 부드럽고 잔잔하나 그래도 그러한 목소리로 한 시대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만일 시가 없었더라면 유신시대를 사는 동안, 나는 더욱 부끄럽고 비참했을 것이다. 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군사독재시대의 한 모퉁이에서 숨을 할딱거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시인들, 김창완 김명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반시’를 결성, 소위 현실참여시의 기치를 높이 들 수 있었던 것도 시가 내게 베푼 은혜 중의 하나다. ‘민중의 차원 속에 동화하지 못한 오만한 언어에 대하여, 시의 본질인 정신보다는 수단일 뿐인 언어세공에 대하여,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맥락으로부터 이탈해 버린 관념적인 세계성에 대하여 부정의 입장에 서고자 한다’고 천명하던 ‘반시’ 창간사의 한 구절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이제 탕아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인 시의 가슴에 안기니 평화롭다. 시가 배불리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순수한 내 피와 살이 되어 내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만은 자명하다.


석수장이가 망치질을 백 번을 해도 돌덩이에 금 하나 가지 않다가 백 한 번째 내리치자 돌덩이가 둘로 갈라지는 경우, 그것은 백 한 번째의 망치질 때문에 돌덩이가 쪼개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망치질 횟수가 모두 합쳐져 쪼개진 것이다. 나는 이제 백 번을 하고 백한 번째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는 백한 번째의 망치질에서 돌이 깨어지는 순간에 태어나는 그 무엇이다.


무엇보다도 내 그릇에 넘치게 물을 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그릇이, 나라는 한 인간의 그릇이 간장종지만큼 작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그 그릇에 시라는 간장을 조금 담아 남들이 밥 먹을 때 조금씩 찍어먹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시로서 무엇을 이룰 생각은 버릴 것이다. 산다는 일이 무엇을 이루는 일이 아니듯, 시 또한 현실적으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흙탕물이 질퍽한 연못에 떠 있는 아름다운 수련과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수련은 더러운 오물들이 떠다니고 온갖 쓰레기들이 가라앉아 있는 진흙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자신을 멋진 꽃으로 만들어줄 요소들만을 뽑아 올려 백색과 홍색의 꽃을 피운다. 주위의 열악한 환경에 아랑곳없는,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을 꽃으로 만들어줄 요소들만 뽑아 올리는 수련의 뿌리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싶다. 그런 뿌리의 마음이 되어야만 현재의 악에서 미래의 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하되 사랑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제 시를 열심히 쓰되 시에 얽매이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몇 차례나 시를 버리는 ‘탕아’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새는 물에 젖지 않고 물에 뛰어든다. 나는 시를 쓰는 물새가 되어 물에 뛰어들다가 그만 물에 젖어버려도 좋다. 물에 젖지 않고 물에 뛰어드는 물새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어떤가. 그래도 물새는 물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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