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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인물-17) 윤학자

작성자초록편지

작성일2013-03-07

조회수5,068

(초록인물-17) 윤학자 

                                                      *정충영 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 예화세상
                                                   초록편지  www.greenletter.net 

 

남산편지 - 한국 고아의 어머니

 

故윤학자(1912∼1968)여사는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1912년 10월 31일 일본 고치(高知)에서 태어난 그녀는 7세 때 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부임지인 목포에 내려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목포공립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고아원 <공생원>에서 음악과 일본어 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생원>과 연을 맺었습니다. <공생원>은 1928년 조선인 '거지대장' 윤치호 원장이 설립한 고아원으로서 그가 목포 개척 전도 당시 동네 다리 밑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7명의 아동을 거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일에서 시작된 고아원입니다. 그녀는 1938년 음악교사로 재직하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치호의 인품에 반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우치 지즈코이란 일본이름을 버리고 윤학자라는 한국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공생원>의 초대 어머니'가 된 윤 여사는 해방 후에도 <공생원>의 원생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그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그를 박해하자 원생들이 "죽이려면 우리를 죽여라. 그러나 우리 어머니에게 손대지 말라"며 그들을 막아섰습니다.

 

한국전쟁 중 남편과 함께 고아들을 돌보던 윤 여사는 1951년 1월 식량 조달을 위해 광주로 떠난 후 행방불명되었지만 그녀는 남편의 뜻을 이어 한국의 고아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돌본 고아만 3천여 명에 달합니다. 그녀의 희생적인 삶은 1997년 한·일 합작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녀가 폐암으로 1968년 10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나자 목포시는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3만여 시민들과 그가 돌본 3,000여명의 원생들이 모여들어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특히 목포시장(강수성)이 낭독하는 고별사를 듣던 많은 사람들은 끝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습니다.

 

다음날 신문에는 '슬픔에 잠긴 목포시가, 오늘 역전광장에서 최초의 시민장' '이날 목포시는 울었다' '영전에서 통곡하는 고아들, 조문객들도 울어' 등의 제목을 단 머리기사가 일제히 실렸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일은 대단히 힘듭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진정으로 얼마나 그를 애통해하는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녀가 평생을 바쳐 섬긴 3천여 고아들의 슬픔과 3만여명의 하객들이 흘린 눈물이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귀했던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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